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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知らせ

2019/02/09

日本に韓国語の種を植える「日本韓国語教育学会」の人々・・イ ジェウ記者の記事より

非営利媒体ファクトオール 前編集長であるイ ジェウ記者が、イム学院長の属している学会のことを紹介してくださいました。韓国語教育に情熱を注がれている学会の方々を知っていただく機会をくださり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韓国語と日本語で載せますのでお読みくだされば感謝です。^^     <2019年2月3日の記事>

・・・・・日本に韓国語の種をまく「日本韓国語教育学会」の人々・・・・・イ ジェウ記者

2007年8月17日、日本で40年間以上、韓国語教育に専念されていた教育者が、この世を去った。東京の二松学舎大学で名誉教授をされていたユ サンヒ先生だ。

1968年日本に渡ったユ先生は、上智大学で教えるなど韓国語教育とそれを教え広めることに人生を捧げられた。75歳で亡くなられた奥様はオ ヨンゥオン先生で、やはり二松学舎大学で名誉教授をされていた。

ご夫妻の素晴らしい足跡は、日本で、ある学術会を生み出す土台となった。ユ サンヒ先生が亡くなった2年後に発足した「日本韓国語教育学会」である。ユ サンヒ先生ご夫妻が、学会の礎を築いたとするなら、そこに骨組みを建てたのは、岩手県立大学のカン ボンシク(62)教授だ。この方たちの歩みは、先日韓国で封切りされたある映画とオーバーラップする。

「一人の十歩より十人の一歩。」これは、映画、マルモイ(国語辞典を意味する言葉)の中の、心に響くセリフのひとコマだ。映画には、日帝時代にハングルを守り通した朝鮮語研究会の関係者たちの血と努力が込められていた。

このセリフのように、2009年9月、オ ヨンウォン先生、チェ ギホ 前モンゴル ウランバートル大総長、カン ボンシク教授、ムン ギョンチョル東北文化学園大学教授らの歩みが加わり、現在の学会が誕生した。

単純に学会をスタートさせたわけではなかった。日本で初めて団体の名前に「韓国語」という単語が付いた学会であった。日本の大学や教育機関などで働く教授、研究者たちが参与した。現在は規模が大きくなり、九州から北海道にまで、学会の会員(100余名)がいる。

初代会長を務めたカン ボンシク教授(現 名誉会長)は1998年から岩手県立大学で教えている。昨年のハングルの日(572周年)慶祝式では、それまでの功労が称られ、花冠文化勲章を授与された。

現在の学会の会長は、ムン ギョンチョル教授が、カン教授の後を引き継いでいる。チェ ギホ 前総長は名誉顧問、オ ヨンウォン先生は顧問として労されている。

「日本韓国語教育学会」は毎年全国を回りながら学術大会を開いている。学術誌出刊、韓国語教師研修、日本人を対象とした韓国語教育や教材開発などに力を注いでいる。今年、学会は10周年を迎えた。学会を導いている役員陣の働きが、さらに忙しくなっている状況である。

毎年東京で開かれている、今年度の第一回学会理事会が2月2日(土)に行われた。学会の監査を務めているイム ムンテク代表(ムジゲ韓国語学院院長、(株)SHINABURO経営)も遠く札幌から駆けつけた。彼は学会の意味について次のように語った。

「今年は私どもの学会が創立10周年となる年です。監査という重責を任されている私は、目白大学での第4回学術大会から参加していますが、私が特別に学会に愛情を持っている理由があります。大学で教えている身分ではない、一般人として参与しているからです。」

イム代表は初めて学会に入った当時、馴染みがなく、適応するのに苦労したという。だが、チェ ギホ、オ ヨンウォン、当時会長だったカン ボンシク教授の配慮で第5回九州大学での学術大会で、研究発表の機会を与えられるようになった。

イム代表は「大学の時の専攻が日本語教育だったので、研究発表は私には新しい挑戦であったし、研究者としての一歩を踏み出す転換点となる大切な時となった。」という。また彼は、「第6回の学術大会を札幌で、成功のうちに終えられるように、配慮と応援をしてくれたり、私に学問の道を開いてくれたのが日本韓国語教育学会なのです。」と付け加えた。

日本の地で韓国語の種を植える「日本韓国語教育学会」の人々。10周年を契機として彼らの努力と情熱がさらに幅広く脚光を浴びることを期待する。<イ ジェウ記者ー非営利媒体ファクトオール前編集長>

일본에 한국어를 심는 ‘일본한국어교육학회’ 사람들

2007년 8월 17일, 일본에서 40년 넘게 한국어 교육에 전념했던 한 교육자가 세상을 떠났다. 도쿄 사립대 니쇼가쿠샤대학(二松学舎大学) 명예교수를 지낸 유상희 선생이다.

1968년 일본으로 건너간 선생은 조치대학(上智大学)에서 가르치는 등 한국어 교육과 전파에 일생을 바쳤다. 당시 75세로 별세한 선생의 아내는 오영원 선생이다. 그 역시 니쇼가큐샤대학의 명예교수를 지냈다.

부부의 조용한 발자취는 일본에서 한 학술모임을 탄생시키는 토대가 됐다. 유상희 선생 별세 2년 뒤 출범한 ‘일본한국어교육학회’다. 유상희 선생 부부가 학회의 터를 닦았다면, 여기에 뼈대를 올린 사람은 이와테현립대학의 강봉식(62) 교수다. 이들의 걸음은 얼마전 한국에서 개봉된 한 영화와 오버랩 된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 더 크다.’
영화 ‘말모이’(사전을 뜻하는 순 우리말)에서 잔잔한 울림을 줬던 대사 한 마디다. 영화는 일제 강점기, 한글을 지켜낸 조선어연구회 관계자들의 피와 노력을 담았다.

이 대사처럼, 2009년 9월 오영원 선생, 최기호 전 몽골 울란바토르대 총장, 강봉식 교수, 문경철 도호쿠문화학원대학 교수 등의 걸음이 보태져 지금의 학회가 탄생했다.

단순한 학회 출범이 아니었다. 일본에서 처음으로 단체 이름에 ‘한국어’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학회였다. 일본 대학과 교육기관 등에서 일하는 교수,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지금은 규모가 커지고(100여 명 멤버) 외연도 넓어졌다(큐슈~홋카이도).

초대 회장을 맡은 강봉식 교수(현 명예 회장)는 1998년부터 이와테현립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지난해 한글날(572돌) 경축식에서 그동안의 공로로, 화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지금 학회 회장은 강 교수의 뒤를 이어 문경철 교수가 맡고 있다. 최기호 전 총장은 명예고문, 오영원 선생은 고문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일본한국어교육학회’는 매년 전국을 돌며 학술대회를 연다. 학술지 출간, 한국어 교사 연수, 일본인 대상 한국어 교육과 교재 개발 등에 힘쓴다. 학회는 올해 10주년을 맞았다. 학회를 이끄는 임원진의 발걸음이 더 바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매년 도쿄에서 열리는 올해의 1차 학회 이사회가 2월 2일(토요일) 열렸다. 학회 감사를 맡고 있는 임문택 대표(무지개 한국어학원원장, ㈜시나브로 경영)도 멀리 삿포로에서 달려왔다. 그는 학회의 의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올해는 우리 학회가 창립된 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감사라는 중책을 맡고 있는 저는 4회 메지로대학 학술대회부터 참석하고 있는데, 제가 남달리 학회에 애정을 갖는 이유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신분이 아닌 일반인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 대표는 처음 학회에 들어갔을 때 낯설고 적응이 힘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기호, 오영원, 당시 회장이던 강봉식 교수의 배려로 5회 규슈대학 학술대회에서 연구발표 기회를 얻게 됐다.

임 대표는 “대학 때 전공이 일본어교육이었던 터라 연구 발표는 제겐 새로운 도전이었고, 연구자로서의 첫 발을 내딛는 소중한 전환점의 시간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6회 학술대회를 삿포로에서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도록 배려와 응원을 해주는 등 제게 학문의 길을 열어준 곳이 일본한국어교육학회”라고 덧붙였다.

일본 땅에서 한국어를 심는 ‘일본한국어교육학회’ 사람들. 10주년을 계기로 그들의 노력과 열정이 더 폭넓게 조명받길 기대해 본다. <이재우 기자‧비영리매체 팩트올 전 편집>